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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전문인 1급시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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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전문인 1급 자격시험 논문』

제12회 예절전문인 검정시험 (단군기원 4345년 10월 30일)

수험번호: 2012-1-01 강 석 우

“인성함양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및 예절소양의 검정평가와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하여”

- 차 례-
Ⅰ. 서론(緖論)
Ⅱ. 인성함양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1. 사람의 인성
2. 가정교육
3. 예절교육
4. 인성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Ⅲ. 예절소양의 검정 평가와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는 방법
1. 예절소양의 검정평가 방법
2. 대학입시와 취업 시험에 반영하는 방법
Ⅵ 결론(結論)

Ⅰ. 서론(緖論)
우리나라는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운이래에 반만년 역사(歷史)를 통해 민족정신(民族精神)과 문화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이어져온 단일민족(單一民族)으로써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자부심(自負心)과 긍지(肯志)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지형(地形)으로 보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며 북쪽은 대륙과 접해있어서 모든 물질문명(物質文明)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일본(日本)이 둘러져있으며 서쪽은 중국(中國)이 있어 보호막이 쳐져 있는 위치이다. 또한 사계절(四季節)이 분명하여 계절의 변화무쌍한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일찍이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도 일컬어 왔다.
또한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같은 황인종(黃人種)이며 고대 부족국가(部族國家) 때부터 같이 발달해 왔으며 오랜 역사(歷史) 속에 중국과는 국경(國境)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현재는 한반도로 한정되었으나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이다. 아시아 동북쪽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같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 속해있으며 특히 중국대륙(中國大陸)의 일부는 우리나라 영토(領土)였으며 한민족(韓民族)이 웅거(雄據)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환경(環境) 속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배달민족으로써 우리라는 공동체(共同體)의식으로 한국인정신(韓國人精神) 즉 인(仁)사상을 실천해온 그런 나라였던 것이다. 또한 백성들은 충(忠)과 효(孝)를 덕목(德目)으로 삼았으며 흰 옷을 입으니 백의(白衣)의 나라라고도 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2천여 년 전 일찍이 공자(孔子)는 우리 한국인(韓國人)을 ‘풍속이 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며,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니 동쪽에 있는 예스러운 군자의 나라라 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예(禮)가 잘 지켜지니 우리나라에 살고 싶어 하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했다.¹⁾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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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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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先祖)들의 당시의 예 사상(禮思想)과 좋은 풍속(風俗)을 가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이후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와서는 여러 나라로 갈라져 천년의 역사(歷史)를 이어져 왔으며, 고려(高麗) 시대에도 삼국(三國)을 통일(統一)하고 단군이 나라를 세운이래 북방(北方)의 영토(領土)를 크게 확장(擴張)하여 대국(大國)이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 주변국인 중국과의 관계는 교류확대(交流擴大)가 많아짐은 사회적(社會的)으로 발전은 순기능도 있었으나 정치적(政治的)으로는 통제를 받는 등 일일이 내정(內政) 간섭과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특이한 점은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펴게 되는데 이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첫째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과정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의 많은 선비들이 유교사상(儒敎思想)을 폭넓게 접하여 유학에 더욱 매진하는 분위기가 확산 되었다고 하겠다.
두 번째 는 유교사상을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삼아 정치에 접목시켜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과 수단으로 삼았다 하겠다.
세 번째는 고려조(高麗朝)까지는 호국(護國) 불교로써 나라를 지키는데 정신적(精神的)으로 버팀목이 되었으나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지나친 미신 숭배 등 폐단(弊端)이 사회저변에 일어났는가 하면 이때까지는 절대다수의 평민들은 문맹(文盲) 이였으나 한글 반포 후 서민들에게 까지 글자로 눈을 뜨게 함으로써 백성들은 글을 접하게 되었고 따라서 보고 듣고 하여 체득하던 굴레를 벗어나 인간 내면(內面)의 인격도야(人格陶冶)의 시기가 도래 되었던 것이다.
조선왕조가 당쟁에 얽매여 국력을 키우지 못하자 외세에 약해질 수밖에 없어 마침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36년 이란 긴 세월에 일본은 우리의 민족정신 말살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씨의 개명과 민족의 전통문화를 근거조차 없애려고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견뎌온 우리 국민은 해방이 되어도 독재 권력에 또다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겪어온 국민들은 민주와 운동이 일어나자 또다시 해방이 된 듯 진정한 자유를 망각하고 방종으로 변해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옛 전통문화(傳統文化) 중 잘 이어져 온 효(孝)와 예절(禮節)은 대가족제(大家族制)하에서 어릴 때부터 손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크면 자연 아버지가 하던 데로 따라서 했던 것이다. 그러니 인성교육(人性敎育)이나 예절교육(禮節敎育)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자연 대를 이어져 온 것이다. 다행히 80년대 이후 국력(國力)이 신장되고 1차 산업(産業)인 농업(農業)에만 의존하다 점차 2차 산업인 공업(工業)의 발달(發達)로 산업화(産業化)에 물결로 획기적 전기를 맞는다. 이 때 부터 농사보다 경제력(經濟力)이 증가(增加)되고 도시생활(都市生活)을 희구하던 젊은 남녀들은 도회지로 직장(職場)을 얻어 나가기 시작하여 농촌(農村) 인구(人口)가 점차 줄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따라 사회(社會)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농촌에 노동력(勞動力)이 풍부한 젊은이가 급속히 줄게 되었고 이에 따라 어린 자녀도 자연 줄게 되어 도시로 몰리게 되니 대가족제도(大家族制)가 자연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²⁾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정교육(家庭敎育)만 무너진 것이 아니고 사회도덕(社會道德)도 물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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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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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物質萬能) 주의에 사로 잡혀 기강이 무너지고 학교교육(學校敎育)도 오직 성적(成績)에만 취
중하고 사람됨을 가르치는 인성(人性) 교육을 옛날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교육방향(敎育方向)에도 원인이 있지만 모든 사회 진출에 성적만을 요구하게 되고 부모들 또한 여기에 편승하여 하나 둘만 낳은 자식 이라 무조건 귀하게만 생각하고 인성(人性)과 성실한 사람으로 기르는 데는 소홀해지는 것이 현재 상황이며, 현대의 우리나라 사정은 옛 날에 듣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은 사라진지 오래 이고 사회 곳곳이 병폐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³⁾
이러한 현실임에도 정부(政府)는 물론이고 사회공공(社會公共) 기관단체(機關團體)나 지도층(指導層)에서 조차 이에 대한 대책(對策)이나 뚜렷한 정책(政策)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안으로서는 인성 예절 교육을 효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공무원(公務員) 임용(任用) 시험에 군 복무경력 또는 군경원호 대상자의 가점 시행제와 같이 예절소양인증제를 시행한다면 제도적(制度的) 장치가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은 물론 학부모와 교육기관 모두가 일사 분란하게 시행이 될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예절(禮節)을 공부하고 실천(實踐)하며 이러한 현 사회에서 그 해법(解法)을 찾아서 앞으로 점진적(漸進的)으로 실천(實踐)해 감으로써 예의한국재건(禮義韓國再建)을 이룩하는데 그
일익을 담당하고자 예절전문인(禮節專門人)으로서 이에 대한 대안(代案)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Ⅱ. 인성함양(人性涵養)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1. 사람의 인성
흔히 우리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令狀)이라고 말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生命體) 중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다 느낄 수 있는 동물은 사람이 으뜸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가 에서도 어릴 때 타이르는 말은 모두다 한결같이‘사람이 되라’고 또는 ‘인간이 되라’고 타 이른다. 누구나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모두가 사람 또는 인간(人間)인데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몸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답게 마음과 행동(行動)을 처신하라는 뜻으로 맹자(孟子)가 말하는 측은(惻隱)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辭讓)하는 마음, 잘못을 가릴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깨우쳐 터득하여 행할 줄 아는 완전한 인격자(人格者)가 되라는 것이다.
동양문화권인 중국의 고대 연원을 살펴보면 인성(人性)은 선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상정된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이라는 글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에도 보이지만 이것이 철학적 범주가 된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서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양화(陽貨에)서 ‘본성은 사람마다 서로 가깝고 습관은 서로간의 차이가 멀다.’라고 하여 인간의 선험적 본성을 인정하였다.⁴⁾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 중민사상(重民思想)의 발전과 치국(治國)이라는 정치적 수요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는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맹자(孟子)는 성선론(性善論)을 제창하였는데, 그 이전에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 논의가 있었다. 첫째는 세석(世碩)의 성유선유악론(性有善有惡論)이다. 이것은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에 보이는 것으로 한 인간의 본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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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27〕
(4)〔유교대사전 1990 P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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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세석의 주장은 후에 논형(論衡) 본성(本性)에도 소개 되
었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의 본성은 선하고 어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주장으로 역시 맹자에 보인다. 세 번째는 고자(告子)의 주장으로 성무선무불선론(性無善無不善論)이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하였다. 그는 인간 본성의 선악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천적 습염(習染)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만을 강조하고 사회성을 무시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맹자는 고자가 생리적 본능을 성이라고 이해한 점을 비판하고, 인간의 사회성, 도덕성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여 성선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등 사단(四端)이 있는데, 이는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등 사덕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사덕은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것으로 이것은 가치 면에서 선하다고 하였다. 그는 또 진심상(盡心上)에서 인간에게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능력인 양능(良能)과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양지(良知)가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사덕과 양지양능을 성선론의 근거로 삼았으며,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동물과 구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물욕의 가람에 의해 선한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과욕(寡慾)을 통한 양심(養心)에 의하면 천부적 도덕 주체로서의 선한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전국 말기에 이르러 순자(荀子)는 맹자 고자 등의 성에 관한 주장을 비판적으로 종합 흡수하였다. 그는 순자(荀子) 예론(禮論)에서 본시재박(本始材朴)을 성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문리융성(文理隆盛)인 위(爲)와는 대립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또 성악(性惡)에서 성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증거로서 ‘인간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발생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한다.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고 충신이 없어진다.’라고 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은 굶주리면 배부르고 싶어 하고 추우면 따듯한 것을 찾으며 피곤하면 쉬고 싶어 한다.’라고 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성의 개념은 생리적 욕구나 본능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성에서 악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는 인간 사외의 선, 혹은 도덕은 문리융성인 위(爲)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맹자의 성선론은 성과 위(爲)를 혼동한 데서 발생하였다고 비판하고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성과 위(爲)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⁵⁾
한편 인간의 본성을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눈 성삼품설은 동중서(董仲舒)에서 발단하여 왕충(王充)순열(荀悅)을 거쳐 한유(韓愈)에 이르러 정립되었다. 동중서는 춘추번로(春秋繁露)실성(實性)에서 성품(性品)을 성인지성(聖人之性)두소지성(斗宵之性)중민지성(中民之性)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앞의 두 가지는 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고 중민지성만을 가리켜 성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중민지성의 성만이 선으로 실현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성과 선의 관계를 벼와 쌀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왕충은 중인(中人) 이상은 나면서부터 성선(性善)이고 중인 이하는 나면서부터 성악(性惡)이며 중인은 성에 선과 악이 혼재해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원기론(元氣論)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에 상‧중‧하의 차별이 있는 것은 천명(天命)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부여받은 원기의 다소에 의해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
(5)〔유교대사전 1990 P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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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였다. 한유는 한 당대에 유행한 성삼품설을 집대성하였으며, 특히 성과 정의 관계에 주목
하였다. 원성(原性)에서 그는 ‘성이란 태어날 때 생명과 함께 갖추어진 것이며, 정이란 사물에 접촉하여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전통적 설명방식을 취하였다. 구체적으로 성이란 인(仁)・예(禮)・신(信)・의(義)・지(智)등 오덕(五德)을, 정이란 희(喜)노(怒)애(愛)구(懼)애(愛)오(惡)욕(欲)등 칠정(七情)을 가리킨다. 그는 성뿐만 아니라 정에도 삼품(三品)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성과 정은 상응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상품・중품・하품의 성이 발하여 각각 상품 중품 하품의 정이 된다고 하였다. 주희는 주자어류 답황도부서문집(答黃道夫書文集)에서 ‘인간과 만물이 생성될 때 반드시 이를 부여받은 후에야 본성을 갖게 되고, 기를 부여받은 후에야 행태를 갖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우주 자연의 이법인 이가 인간에게 내재될 수 있는 근거를 천(天)이라고 규정하는 설명 방식으로서 중용(中庸)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인간에게 명부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 이라는 명제와 같은 논리이다.
그는 또 주자어류 맹자(孟子)에서 성은 인간 속에 내재하는 천리(天理)라고 전제하고 이 천리와 자연의 본체인 천도(天道)는 동일한 이(理)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즉 인간은 마음속에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외부의 조리(條理)들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마음은 만리(萬理)를 갖추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하였다(朱子語類 答巖時亨) 주희는 장재와 같이 인간의 본성을 기질지성과 본연지성(本然之性:天地之性)으로 나누어서 생각하였다.⁶⁾
그에 의하면 본연지성이란 인간이 부여받은 천리이며 자연의 본체인 천도와 본래 동일한 이를 가리킨다. 즉 지선한 천도태극의 생생지리(生生之理)를 인간이나 만물이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는 본연지성이라고 규정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답서자융(答徐子融)에서 본연지성이 기질(氣質) 가운데 타재(墮在)한 것이 기질지성이지, 기질 그 자체가 하나의 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본성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것은 설명이나 방법론상의 문제이지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그는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을 주장하여 성과 정이 마음에 의해 통제된다고 하였다. 즉 성과 정의 관계에 있어 성은 정을 통해서 발현되는데, 허령(虛靈)한 기능을 가진 마음의 통제에 따라 정으로 하여금 중절(中節)하도록 하며, 마음의 통제 기능 여하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나라 퇴계 이황(李滉)은 주희와 같이 인간의 본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둘로 나누고, 성정의 관념도 이기이원(理氣二元)의 호발(互發)로 보았다. 그는 본연지성을 순일무잡(純一無雜)한 절대선이라고 규정하여 본질적으로 악을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즉 본연지성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생각과 행동은 선이 되며 맹자의 소위 인․의․예․지 등 사덕(四德)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기질지성에 대하여 그는 이체(理體)가 형질을 빌어 구현 되 것이라고 규정하였는데, 기질 내에 본연지성이 들어있는 상태, 즉 이와 기가 혼합된 상태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개인차, 선불선(善不善)의 차가 생기는 원인을 기질지성에서 찾았으며, 악의 근원 또한 기질지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또 성과 정을 체용 관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설명하였다. 즉 성은 본체이고 정은 그 발용인데, 정 가운데는 순선무악(純善無惡)한 사단과 선악미정(善惡未定)의 칠정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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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유교대사전 1990 P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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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발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제창하였다.⁷⁾
이이(李珥)는 천리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을 성이라 하고, 성과 기가 합해져서 인간의 육체를 주재하는 것을 심이라 하고, 심이 사물에 응하여 밖으로 표현 되는 것을 정이라고 하는 성리학의 기본 틀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단을 이에, 칠정을 기에 분속시킨다거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확연히 구분 짓는 이황의 이분법적 논리에 반대하였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와 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따라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사단과 칠정도 따로따로 분리하여 고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율곡전서(栗谷全書) 답성호원(答成浩原)의 자주에서 ‘사단은 칠정 중에 들어 있고, 칠정은 이와 기를 겸한다.’라고 하여 사단이 칠정 속에 포함된다는 것을 암시하였고, 답성호원(壬申)에서는 본연지성이 기질지성 속에 포함된다고 암시하였다. 따라서 그는 선악 문제에 대하여 칠정이 발할 때 기질의 엄폐를 받지 않고 중절에 맞는 것을 모두 사단이라 하였으며, 이것은 항상 선하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기질의 엄폐로 인하여 성의 본모습이 상실되면 악이 되고 중절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이발(理發)을 부정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에 근거한 것으로서 성일원론(性一元論)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 성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즉 기호학파(畿湖學派) 안에서 인간과 동물․사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이 야기되었는데, 이를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은 이간(李柬)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중용(中庸) 수장(首章)에 대한 주희의 주석, 즉 ‘사람과 사물이 생할 때 각기 부여받은 이(理)를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으로 삼는데, 이것을 성이라고 한다.’라는 말에 근거하였다. 그는 본연지성의 순선(純善)을 강조하여 이것이 미발(未發)한 상태에 있을 때는 기질지성도, 상대적 선악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본체론적으로 보면 사람마다 본성이 같고 사람과 사물의 본성도 같다고 결론 내렸다. 또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은 한원진(韓元震)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맹자의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에 대해 주희가 ‘인․의․예․지의 품부(稟賦)를 어찌 사물들이 모두 온전히 얻었겠는가?’라고 내린 주석에 근거하여 사람의 기질지성과 사물의 기질지성은 서로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의 본질을 기질지성이라고 규정하고 심의 미발 상태에 있어서도 그 구성 요소로서의 기의 편전(偏全)으로 말미암아 심은 순선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로 인물성구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태극을 성으로 규정하여 일체 만물의 본성이 같음을 주장하였고, 인물성상이를 주장하는 이들은 음양오행을 성으로 규정하여 일체만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전자는 ‘성은 바로 기다(性卽氣)’라는 입장에, 후자는 ‘성은 바로 기다’라는 입장에 근거한 것이다.⁸⁾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했다.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말 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청하였다(道性善 言必稱堯舜)’고 한데서도 나타나며, 시경(詩經)에 ‘천(天)이 뭇 백성을 내니 물(物)이 있으면 법칙도 있다. 백성들은 변치 않는 그것을 잡고 그런 아름다운 덕(德)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나 서경(書----------------------------
(7)〔유교대사전 1990 P 700〕
(8)〔유교대사전 1990 P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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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의 질서에 법이 있다’, ‘하늘의 등급에 예(禮)가 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의 ‘한 번 양(陽)하고 한번 음(陰)하는 것을 도(道)라고 이르고, 이것을 계승하는 것이 선이며, 이것을 이루는 것이 성(性)이다.’라 한 것은 모두 성선설의 연원으로 볼 수 있다. 또 공자(孔子)가 말한 ‘성상근(性相近)’의 성과 성선의 성은 그 의미에 있어서 상호간에 통하는 바가 있다. 맹자가 ‘마음(心)이 같은 바는 무엇인가? 이(理)이며, 의(義)이다.’라 한 것은 상근지성(相近之性)과 성선이 일치함을 보여준다. ‘성’은 ‘심(心)’과 ‘생(生)’이 합하여 된 글자이다. 그것은 나면서부터 그러한 것, 즉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가리킨다. 성은 바로 하늘이 명(命)하고,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곧 천생(天生)의 원칙이요, 또한 인간이 인간 되는 까닭의 근본이다. ‘선’은 ‘언(言)’과 ‘양(羊)’이 합하여 된 글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그것을 ‘의(義)나 미(美)와 같은 뜻’으로 보고 있다. 맹자의 성선설에 있어서 성선이라 함은 인간 고유의 본질로서 인성(人性)이 선하다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인간의 경험에 의하여 좌우 되는 바의 성선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선은 윤리적(倫理的) 의미에 있어서나 심리적인 작용에 있어서 작용되는 선이라기보다 도덕 기능(道德可能)의 그거로서의 성이며 선이다. 측은의 마음은 이(仁)의 단(端)이고 수오의 마음은 의(義)의 단이고 사양의 마음은 예(禮)의 단이고 시비의 마음은 지(智)의 단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이 사단(四端)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선한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을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중용(中庸)에서‘성은 하늘의도요, 성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사람의 본성은 성(誠)으로서의 선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고 했다. 성악(性惡)에서 ‘사람의 성(性)은 악이니, 그 선(善)이란 것은 위(爲)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위’란 인위를 의미하며, 순자는 성이란 천성(天性)으로 사람이 배울 수도 없고, 일삼을(事) 수도 없는 것이면서 사람에 있는 것이며, 또한 배워서 능(能)하고 일삼아서 이룰 수 있는 것으로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위라고 하였다. 사람의 성은 나면서부터 이(利)를 좋아하므로 쟁탈이 생기고 사양이 없어지며, 사람은 나면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잔적(殘賊)이 생기고 충신(忠臣)이 없어진다고 한다. 또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목(耳目)의 욕(欲)이 있어 성색(聲色)을 좋아하므로 음란이 생기고 예의문리(禮儀文理)가 없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순자는 천성에 따르면 쟁탈, 잔적, 음란 등이 일어나 사화가 편험 패란하게 되므로 성인이 ‘사법지화(師法之化’와 ‘예의지도(禮義之道 )’를 제정하여 정리정치(正理政治), 즉 선되게 한다고 설명 한다. 이러한 성악(性惡)의 증험으로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학문은 선(善을) 완성하는 것인데 만약 성이 선이라면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배워서 되는 것은 위(爲)이다. 둘째, 맹자는 인성이 선하므로 사람이 악을 하는 것은 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만약 성이 선이라면 결코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상실한다는 것은 성이 악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셋째, 도덕(道德)은 강한 의지력(意志力)으로 강제를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은 위이다. 넷째, 사람은 항상 자기의 결점을 보충하려고 한다.
성이 약하여 예의가 없으므로 면강(勉强)해서 예의를 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사람들이 요순(堯舜)을 존중하고 군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악한 성을 변화시켜 위(爲)인 예의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자는 성악에서 어떻게 생(生)하느냐는 근거 해명에 대해서는 매우 군색(窘塞)하였다. 순자는 선천적인 도덕성을 근본으로부터 부정 하면서 후천적(後天的)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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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驗)과 수양(修養)과 문화적인 노력에 의하여 인간은 형성되고 인의법정 혹은 예의를 학습하고 내면화 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방법론(方法論)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대개 맹자(孟子)는 도덕선천설(道德先天說)의 입장에서 심의(心意)의 현상학적(現象學的) 직관(直觀)을 토대로 성선을 주장하여 후천적인 물욕함닉(물욕함닉(物慾陷溺)을 악의 연원으로 보고서, 과욕(寡慾)을 주장하여 본성확충을 고취 하였지만, 순자는 도덕후천설(道德後天說)의 입장에서 형색의 경험적인 악의결과에 치중하여 그 연원인 성을 악이라 하고 선을 위라 하여 성의 선한 측면을 통찰하지 못하였다.⁹⁾
이와 같이 두 성인의 주장하는 학설(學說)이 그 방향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원래의 목표(目標)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 고유의 본질(本質)로써 선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므로, 후천적(後天的)으로 인간의 경험에 의하여 좌우되는 태어나서부터 환경에 따라 좌우 된다는 것이며, 순자(荀子)는 사람의 성은 나면서부터 이(利)를 좋아하므로 쟁탈이 생기고 사양(辭讓)이 없어지며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후천적인 경험과 수양과 노력에 의하여 인간은 형성되고 예의를 학습하고 내면화함으로써 도덕적(道德的)으로 완성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비추어 볼 때 전자이든 후자이든 태어나서부터 경험(經驗)과 수양(修養)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전항에 논거 한 바와 같이 성선(性善)이든 성악(性惡)이든 인성은 어릴 때부터 반드시 경험과 수양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는 이론이 없다 할 것이다. 이것은 지역(地域)과 계층의 구분이 있을 수 없으며 동일한 지역 내 같은 문화 생활권(生活圈) 내에서는 모두 다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나타나지 않은 사례도 무수히 많겠지마는 대표적인 예로서 조선시대의 구운몽(九雲夢)의 작가 서포(書鋪) 김만중(金萬重)의 어머니 윤(尹)씨 부인은 병자호란 대 강화도에서 부군(夫君)이 순국(殉國)하였는데,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난 아들이 잘못이 있으면, 그 아들을 시켜 남편 사당(祠堂)에 비단보로 싸둔 회초리를 가져오게 하여 종아리를 때리면서 ‘이 매는 이 어미가 때리는 것이 아니라 너의 아버님께서 때리는 것이다 너는 남과 달라 편모 자식이라 잘못이 있으면 그 욕이 남보다 클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엄한 어머님의 훈육(訓育)을 받고 자란 두 아들 중 큰아들은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며 그의 딸이 숙종의 비(妃)가 되어 임금의 장인(國舅)이 되었고, 작은아들 서포 김만중은 지극한 효성(孝誠)과 학자(學者)로서 후대에 빛을 낸 큰 인물(人物)이 되었다. 그래서 윤(尹)씨 부인의 매는 벌이 아닌 가르침 이었고, 그 매는 아픔이 아닌 후회(後悔)와 경각(警覺)과 다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중기 영남학파(嶺南學派)의 대두이자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集大成)한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선생의 휘(諱) 는 황(滉)이고 자(字)는 경호(景浩),호(號)는 퇴계(退溪),퇴도(退陶)라하며 시호(諡號)는 문순(文純), 본관(本貫)은 진보(眞寶)이다. 선생은 진사(進士) 이식(李埴)의 막내아들로 서기 1501년 연산군 7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출생 후 7개월 만에 40세의 아버지를 여의고 7남 1녀의 막내아들로 32세의 젊은 어머니 박씨(朴氏) 슬하에서 생계(生計)가 어려운 환경(環境)에서 자랐다. 선생은 현모(賢母) 박씨(朴氏)의 정성어린 학비조달에 뒷받침이 되어 취학(就學)으 길로 나서게 되었다. 박씨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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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김득중 월간실천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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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訓戒) 하기를 ‘문예(文藝)만을 힘쓸 것이 아니라, 더욱 특신근행(特身勤行)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하였을 뿐 아니라 ‘세인(世人)이 흔히 과부(寡婦)의 자식(子息)은 교육(敎育)이 없다고 비난을 면치 못하니 너희들은 남 보다 백배 이상 공(功)을 쌓지 않으면 어찌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하여 늘 격려(激勵)하고 감화(感話)하였으니 박씨의 숨은 공이 얼마나 컷 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¹⁰⁾
6세에 천자문을 배우고 12살 때 숙부 송제(宋齊) 이우(李堣)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이때 숙부도 퇴계(退溪)의 총명(聰明)에 감탄하여 친아들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한다. 14세에 독서의 취미를 알아 중국의 도연명시(陶淵明詩)를 사랑하였고 15세 때에는 시작에 유의(有意)하여 범상치 않은 시상(詩想)을 유출하기도 하였다. 19세 때 성리대전을 읽었고 20세 때에는 주역(周易)을 독파(讀破)하여 00을 탐구하기에 침식(寢食)을 잊었다. 이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선생은 39세 때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이 되었고 42세 때 어사(御使)가 되어 탐관오리(貪官汚吏) 숙청(肅淸)을 위해 충청도 지방을 순찰(巡察)하여 판관인 귀손 을 경치게 하였으며 43세에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이 되었으나 사직(辭職)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學問)을 연마(鍊磨)하였다. 서기1548년 48세 때 단양군수(丹陽郡守)가 되었다가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전임하여 서기 1550년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扁額)을 명종(明宗)으로부터 하사(下賜)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만들었다. 50세가 되자
퇴계는 또다시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 내려와 학문연구(학문연구(學問硏究)에 전심하여 계몽전의(啓蒙傳疑)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심경석의(心經釋義) 가은 책을 만들었다. 60세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세우고 후학(後學)을 가르쳤으며 서기1568년 6월에 예조판서가 되었다. 8월에 사직하고 낙향하였으나 그달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대제학(大提學)이 되었으나 사임(辭任)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선생은 관직 40년에 출처진퇴(出處進退)가 의(義)를 따랐을 뿐이요 전후에 무릇 7도(道)에 걸처 난진역퇴(難進易退) 절조(節操)를 지켰다. 이러한 성현의 일생을 통해 어린 시절에 부모나 가정교육이 인성의 완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일생을 좌우 하게 됨을 읽을 수 있다. 위에서 밝힌 두 분 모두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그 어머니의 훈육이 크게 작용 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의 예학에 대한 사료가 이어져오지 못 하다가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많은 학자들이 연구(硏究)하며 예서를 발간하는 등 한국예학(韓國禮學)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마침내 정치에 예학이 접목되기 시작 한 것이다. 임금이 국사(國事)를 논함에 모든 의식 절차가 예에 맞추어져있고 신하는 신하된 도리가 예에 어긋날 수 없었으며, 특히 봉직 자는 도덕과 청렴(淸廉)의 의무를 더욱 강조되어 온 것으로 그러함에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신서(牧民心書)와 같은 공직자가 처신해야 할 자세와 행동과 치정 방법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¹¹⁾
이에 따라 일반 백성들도 지역의 선비들의 모습을 모방해 부모와 조상(祖上)에 대한 효도(孝道)와 사회생활에 나름 데로 예법을 쫒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하겠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당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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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안동군 서원총람 1978〕
(11)〔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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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과 예학자의 학파로 나뉘어져 정쟁(政爭)의 명분을 예의에 걸고 시시비비를 가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것으로서 그 예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 차례의 예송사건(禮訟事件)을 들 수 있다.¹²⁾
그러나 이러한 당파 싸움의 이면에는 정치도 도덕성과 명분을 내세우기 때문에 이면에는 예학(禮學)이 더욱 관심이 되어 일반 백성에 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본다면 한마디로 조선 시대 만큼은 예절이 잘 지켜온 시대였고 예절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위한 윤리 규범의 하나이고, 자율적이라는 면에서 법(法)과는 구별된다. 사기(史記)에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의 ‘예(禮)는 아직 그러하기 이전에 금하는 것이고, 법은 이미 그러한 후에 적용하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이 이점을 설명한 것이다.
공자 이전의 예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은 서경(書經)의 여러 기록에서도 나타나거니와 당시의 예의 관념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이었다. 서주초(西周初)에 이르러서는 은례(殷禮)를 답습하다가 주공(周公)에 의하여 예악(禮樂)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례(周禮)도 공자 당시에는 많은 변천을 겪어야 했다. 예가 사회적 규범인 이상 고정적인 것일 수 없고, 공간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¹³⁾
그러기에 공자는 ‘은나라는 하례(夏禮)에 말미암았으니 손익(損益)한 바를 알 수 있고, 주나라는 은례(殷禮)에 말미암았으니 손익 한 바를 알 수 있으며, 혹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비록 백대(百代)라도 알 수 잇을 것이다.’(論語, 爲政)라고 하여 하(夏), 은(殷)의 예의 손익(損益)을 말하였다. 주대의 예는 종교적 성격이 많이 감소되고 정치적 윤리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주왕실의 통치수단적인 의미가 반영되었음을 뜻한다. 한편으로 공자의 시대는 ‘무도(無道)의 사회’로 표현할 만큼 각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전념하던 상황이었다. 주관(周官)은 바로 주대의 법제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예는 바로 법제를 의미하며 천명(天命)에 입각한 예악정치(禮樂政治)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공자의 덕치(德治)와 맹자(孟子)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이 그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능히 예양으로써 실천한다면 나라 다스리는 데 무엇이 어려울 것이며, 능히 예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를 어찌 하리오?’ (論語, 里仁)라고 하였던 것이다.

2. 가정교육
가정교육을 논함에 있어서는 옛날의 대가족제 하에서의 전통이 잘 전해져 오던 때와 현대의 핵가족제로 변천 하게 되는 시기를 분리해서 대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가족제하에서는 어느 정도 전통이 유지되어 왔으나 물질문명의 발달과 핵가족화로 인하여 옛날의 전통이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별 년도는 식량의 자급자족과 농경사회에서 2차 산업이 활발히 발전하는 시기인 1980년대 초가 된다고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가정교육이란 특별하게 단어나 의제 또한 없었다.¹⁴⁾ 그냥 옛날부터 해오던 풍습 데로 습관화되어 자연적으로 보고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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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한국전례연구원 예절지도교육연구과정 보충교재 P 175〕
(13)〔교대사전 1990 P 759〕
(14)〔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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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며 전수되어 왔다. 대가족제 하에서 할아버지는 위엄으로 교훈을 내리고 아들은 그 뜻은 물론이고 효성을 다해 어른을 공경하며 모시게 되니 세대 간의 사랑과 공경이 어우러져 부자자효(父慈子孝)가 이루어지고 형제지간에는 여러 남매가 커가면서 맏이는 아우를 돌보고 보살피며 아우는 웃 형들을 따르고 공경하니 우애공순(友愛恭順)이 자연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매일매일 연속되는 효와 도리의 순서를 보고 듣고 따르게 되는 손자 손녀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서 실천하게 되어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웃과의 인정 또한 특별한 정을 나누기도 했으니 그래서 멀리 있는 사촌
보다 이웃사촌이 더 좋다고 하는 말이 있기도 한 것이다.¹⁵⁾
그 당시의 농촌실정은 대다수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입는 옷이며 주거하는 집도 허술하기가 그지없었으니 좀 더 나은 의식주(衣食住) 해결을 위해 발버둥 칠 때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도와주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이 가득해 있었으며 별미 음식이 있으면 이웃집 어른에게도 먼저 대접하는 순풍양속이 잘 이어져 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된다. 정치적으로는 유신정권의 통치가 끝나는 듯 했으나 신군부의 집권으로 이유와 관계없이 군부통치가 이어지자 국민들은 민주화를 갈망하고 있던 때였고, 정치인과 학생들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의사표시를 할 즈음이었으며, 사회가 매우 불안하고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겠다. 이때는 지역과 지위의 구분도 없이 일반국민들도 많은 동조가 있었고 분위기는 무척 고조 되었던 시기이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다 하겠다. 조선시대부터 지배계층과 평민층, 부자와 가난한 빈민층으로 대별되어 평등사회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36년을 갖은 압박에 시달려 암울한 시절을 보내야했던 일들을 몸소 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통해 소상히 알고 있으므로 국민 대다수가 억눌려 있던 과거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였다. 그 후 해방은 되었으나 먹고살기는 어려운데 정치는 북한과의 대립이나 독재 권력의 연장을 위해 늘 국민을 옥죄는 형국이 되다보니 국민은 피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때마침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니 가진 자나 못가진자나 할 것 없이 커다란 저항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려 법질서와 국민 기강이 무너지게 되어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이고, 빈곤층은 그들 데로 불만이 있던 중 조금 타피한 졸부들은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절대 다수가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물질 만능주의 지경에 이르러 가정에서부터 예절이 지켜지지 않으니 사회의 도덕이나 질서정신이 무너지고 전통사회의 윤리의식이 파괴되어 가는 형국이 된 것이라 하겠다.¹⁶⁾

3. 예절교육(禮節敎育)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일컬어왔으며 먹고 사는 의식주(衣食住)는 궁핍(窮乏)하였지마는 지역(地域)과 신분(身分)에 관계없이 그 정신(精神)과 전통예절(傳統禮節)이 잘 전해져 왔었다. 흔히 일컫는 양반계층은 유년기부터 부모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정에서는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와 학문을 통해 사람으로서의 행하여야할 이치를 깊이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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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12〕
(16)〔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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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득함으로써 이른바 윤리사상이 뿌리깊이 내재되어 전수되어오고 있었다 하겠다. 또한 일반 평민들도 비록 글로써 깊은 윤리 사상을 통달하지는 못하더라도 눈으로 보고 듣고 하여 체득을 통해 몸에 익숙해져서 그것이 마음속 깊이 내재된 완전한 예절은 못되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외형은 따르게 됨으로써 자연히 동참을 하게 된 다 하겠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이 5〜60년대 헐벗고 배고 푸던 시절을 거처 7〜80년대에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산업화의 물결에 농촌의 젊은 이 들은 직장을 따라 떠나게 되면
서부터 밥상머리 가정교육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으며 그 후 1990〜2000년대에는 많은 국민들은 민주화에만 메달려 우리의 정신문화의 계승발전과 인성의 함양에는 안중에도 없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인해 오늘 날 우리 사회현상은 지역과 계층 간의 양극화 현상이 한층 더 심화되고 개인 간 지역 간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하면서 갈등과 반목, 그리고 심지어는 폭력이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현실이 되었지만 이를 치유 하고자 노력하는 정책과 책임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곳은 찾아 볼 수가 없는 형편에 있다.¹⁷⁾
2011년 10월 안동에서 세계청년 유림대회를 개최 하였는데 퇴계학연구원의 이용태 이사장은 특강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에는 향교나 유림단체에서 인성교육을 하고 있으나 교육기간이나 프로그램이 미약하고 우리나라 전체를 보아 30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온 나라가 새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 한바 있다. 이는 우리의 현 사회 현상을 직시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성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바르게 키우는 것이 순리이자 책임이며 현세대의 젊은 부모들 또한 모두가 옛날의 부모들 같지가 않으며 또한 그 시절에는 가정에서 미흡한 부분이나 자기 자식이 말썽을 부리면 선생님에게 찾아가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인간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일부이긴 하지만 교육상 회초리를 조금 들면 체벌 운운하며 고발까지 일삼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 까닭이 없고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고 옛날에는 가정마다 훈육이 엄했고 이웃의 어른들도 잘못하는 경우를 볼 때면 즉시 타이르고 꾸중도 했다. 그러나 현대는 타이르는 말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왜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고 달려들거나 시비를 거는 것이 다반사이므로 어지간해선 누구도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못 본체 하기가 일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무질서함과 흉악한 범죄와 인륜과 도덕사상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누가 어느 부서에서 무거운 책임을 갖고 치유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를 크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에 힘입어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강국에 접어들었다고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방예의지국에 입각한 2세들의 교육도 그렇게 비등하게 동반 성장 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해방 후 최단기간에 크게 성장하여 선진국으로 분류해 발전의 모델로 삼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력이나 개인의 능력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오히려 이웃과 더불어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의식이나 윤리와 도덕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사회의 문화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하여 극심한 이기주의를 가져 오게 하였고 사회와 가정의 미처 깨닫지 못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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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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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에서 적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여서 보이지 않는 순간에 우리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¹⁸⁾
부모나 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에만 신경쓰다보니 인간성을 기르는 데는 실패하였다고 하겠다. 이 때문에 학교생활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폭력 등 잘못된 길로 휩싸이기도 하며 급기야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형편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의위기 상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예의지국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을 초래케 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급성장한과 핵가족화와의 사유도 있다고 하지마는 교과 성적만 우선하는 교육과 사회제도에서 필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¹⁹⁾
오늘날의 이 문제를 당장에 해결할 수도 없고 우선 학업에만 열중하는 것을 올바른 인성함양에 방점을 두고 자상하게 인도하는 성의를 가져야 할 것이며 부모들의 마음 자세부터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원 과정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 도덕시간을 복원 또는 늘려서 인성교육이 정상적 운영이 되도록 특단의 조치를 하여야 할 것이며, 이웃과 지역사회 단체에서도 인성과 예절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여 가정교육을 대신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행정기관에서는 재정을 교육시설이나 단체에 확대 지원하여 활발히 전개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다.²⁰⁾
학교에서는 비리나 문제 학생을 감추거나 방치하여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즉각 시정이나 상응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교직원들의 학생들에게 인성과 예절교육
이 잘 이루어 질수 있도록 연수나 특별교육을 하여 자질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본다.

4. 인성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인성이란 사람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은 다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인간의 본성은 모두 다 같다고 할 것이나 태어나서부터 어떻게 경험하고 체득하여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할 줄 아는 그런 인성을 말함이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이나 양설 모두 태어나서 끊임없이 채근하고 배우며 실천해야 한다. 많은 인간은 모두 다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차만별이고 예절교육으로 일부를 보충 하고자 하나 인성이 올바르게 잡히지 못한데서 아무리 교육을 해도 별로 그 효과가 적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전통사회에서는 한 인간을 위한 백년대계의 시작을 잉태 전부터 했다. 바로 태교 문화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인격체로 인정하여 좋은 인격체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잉태 전부터 정성을 다 한다. 태교란 수태(受胎)의 교육으로써 태로 연결된 어머니와 자녀간의 인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며 어머니가 자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바람직한 행위를 뜻한다. 태교는 임부가 임신 기간 중에 마음가짐, 행동거지, 음식 등을 주의하여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으로 다소 산속적(産俗的)인 것도 포함하기는 하나 태교의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 먼저 신속과 구별해야 할 것이다.태교는 수태 전부터 출산 시 까지 임부는 물론 주변인 까지 출생될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여 선천적인 교육이 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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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인성교육 비전 선언문 2012〕
(19)〔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인성교육 비전 선언문 2012〕
(20)〔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인성교육 비전 선언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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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조성활동 일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실제에 있어서도 태교는 훌륭한 자녀를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교육이며 행동수칙으로 장기간에 걸친 경험과 철학, 그리고 의학이 총합되어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근래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의 깊이 있는 연구와 더불어 과학, 영양학, 모자보건, 발생학, 태생학 등에서 유전에 앞서 환경의 영향설이 지배적이며, 따라서 분석적 연구는 물론 임상적 실험 결과가 계속 발표됨으로써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李氏)의 태중훈문(胎中訓文)에는 ‘선철(先哲)의 지나간 행적을 더듬고 그에 관한 책을 독서하며 나도 그와 같은 위인을 낳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통 인간이 실현 하기는 힘이 들지만 태아를 위하여 좋다는 행동을 해야 한다’하여 태어날 아기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임부에게는 얼마나 힘든 것 인가를 알려주고 있다.²¹⁾
예절의 정의는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관습을 통해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 생활규범이다. 흔히 말하기를 예절은 버릇이다. 무례한 사람을 보고 ‘버릇없다고’고 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아무렇게나 하는 것을 보고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하는 것으로 법(法)이란 말이 증명된다. 여기에서 법은 민법이나 형법이 아니고 예법이라는 말이다. 또한 예절은 약속이다. 만약 우리가 멀리 떨어져 혼자 산다면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지만 남과 어울려 더불어 살려니까 예절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려면 생활방식이 같아야하고 생활방식이 같으려면 때에 따라 하는 방식을 약속해 놓아야 할 것이며 이것이 예절이다. 예절은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다. 조선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선생도 ‘우리나라 남북지방의 풍속과 우리나라학자들의 학설을 종합했다’고 하였다.
우리 주변과 생활 속에는 어떻게 예절이 있는 것일까? 산에 있는 오솔길은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는데 오솔길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아무도 예절이라는 약속을 한 사람이 없는데 예절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 이 오솔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제일 가깝고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가려고 무수히 다니다 보니 마침내 체험적으로 그 곳을 알게 되고 길이 될 것이다. 생활방식도 마찬가지로써 같은 여건하의 생활권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편리한 방식을 알게 될 것이고 누구든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절을 관행성 사회계약적 생활규범(慣行性 社會契約的 生活規範)이라 하는 것이다.²²⁾
사람은 외톨이로는 살지 못한다. 반드시 대인관계를 역어 더불살이를 해야 하는데 그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려면 상대편의 생활 방식을 알아야 한다. 대인관계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므로 이것을 잘 하려면 먼저 스스로 사람이 되려는 자기관리(自己管理)를 잘 해야 한다. 예절은 실제와 격식이 있는데 실제는 마음속에 의사(意思)의 형태로 숨겨져 있으며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다. 격식은 언어예절에는 우리가 약속해 놓은 어휘와 어법이 있고, 행동에도 약속해 놓은 행동방식이 있다. 따라서 예절생활은 약속을 지키는 것인데 약속을 지키려면 그 내용을 먼저 알아야 한다.
현대생활을 하는 데는 현대예절을 알아서 행해야지 전통예절은 몰라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경해는 전통이 무엇인지 몰라서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전통이란 오래되고 낡아서 현대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것으로 현대를 사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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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김계숙 좋은 아기 낳는 태교 2007〕
(22)〔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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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신뢰하고 긍정해서 수호하고 계승할 가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전통예절은 우리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예절로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그것을 옳다고 여겨서 지키고 행할 필요를 느끼고 자손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서 물려줄 가치를 갖는 생활 방식이다.²³⁾ 그러므로 전통예절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예절이면서도 현대생활도 필요한 것이므로 현대예절의 일부라 할 것이다. 유구한 민족문화를 누린 나라일수록 전통예절이 많다.
예절이 오랜 생활습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립된 생활방식이므로 문화전통이 길수록 전통예절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활여건이 달라지면 당연히 예절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져야 할 부분과 달라져서는 아니 될 부분이 있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서 기르며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극진한 효성으로 그 은혜에 보답함에 있어서, 자녀를 기르는 데에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는 것은 달라질 수 있어도 낳고 사랑하는 것은 달라질 수 없고, 효도에 있어서도 주거 환경이나 의복·음식 등은 달라질 수 있어도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정성이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예절을 기본적으로 분류함은 전통과 현대, 국내와 외국에 관계없이 예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예절의 종류는 어떤 기준에 의해 구분되느냐에 따라 수없이 갈라질 수 있다.먼저 예절의 본질에 따라 구분 하면 정성(誠), 공경(敬), 사랑(愛)으로 나뉘고, 예절의 목적에 의해 분류하면 자기를 바르게(修己)하는 자기관리(自己管理)와 남을 상대(治人)하는 대인관계(對人關係)로 나눠진다.
예절의 성격을 중심으로 나누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正心修身) 스스로를 규율하는 법도(自律的法度), 사람노릇하며 사는데 지키는(生活倫理) 사람으로서의 의식예절(倫理的儀禮), 사회생활을 하는데 그렇게 하기로 정한(契約秩序) 사회에서의 예절제도(社會的典禮), 조직·단체·국가를 경영하기 위해 강제되는(他律强要) 법률이나 정치제도(政治的法制) 등으로 구분 한다.²⁴⁾
예절이 행해지는 범위 영역을 기준으로 나누면 개인의 예절이라 할 수 있는 수신예절(修身禮節), 가정생활의 가정예절(家庭禮節), 사회예절(社會禮節), 국민으로서의 의식절차인 국민의례(國民儀禮), 국가 간의 예절인 국제의전(國際儀典)이 있다. 예절을 행하는 방법과 상태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정신(心), 몸차림(身), 의사소통(言), 기거동작(動), 위계질서(止)등의 종류가 있다. 예절의 기능 면에서 보면 홀로를 삼가(愼獨)는 대내대자적(對內對自的) 작용과 상대를 편안하게(安人)하는 대외대타적(對外對他的) 활용이 있다.
예절의 실천적 분류로는 행위대상에 의한 분류로 스스로 사람다워지려는 자기관리를(개인예절)혼자 하는 예절과 남과 어울려 함께 사는 대인관계를 영위하는(의사소통예절) 남에게 하는 예절, 모두가 함께 실천하는 예절로 조직생활 단체생활(공중도덕)과 같은 함께하는 예절이다. 적용범위에 의한 분류로는 기본예절은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공통예절 이며, 생활예절은 생활환경에 따라 하는 개인예절, 가정예절, 학교예절, 직장예절, 사회예절, 국제예절 등이 있다. 의식예절은 모든 분야에 도식화(圖式化)된 의식절차로서 공통례(共通禮), 가정의례(家庭儀禮), 작명례(作名禮), 성년례(成年禮), 홍인례(婚姻禮), 수연례(壽宴禮), 상장례(喪葬禮), 제의례(祭儀禮), --------------------------------
(23)〔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62〕
(24)〔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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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례(社會儀禮), 국제의전(國際儀典)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²⁵⁾
스스로 사람다워지려는 자기관리(自己管理)를 수기(修己)라 하고, 남과 어울려 함께 사는 대인관계(對人關係)를 치인(治人)이라 한다. 수기하는 예절은 자기의 안에 있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작용(對內對自的作用)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때의 본질은 정성(誠)스러운 것이고, 치인하는 예절은 자기의 밖으로 나가 남에게 활용(對外對自的活用)되는 역할을 하는데 그때의 본질은 공경(敬)과 사랑(愛)하는 것이다. 자기관리의 요령은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신독(愼獨)이고, 대인관계의 요령은 남을 편안하게 하는 안인(安人)이다. 정성이란 자기를 속임이 없는 무자기(毋自欺) 양심(良心)이고, 공경과 사랑이란 어른을 공경(敬長)하고 아랫사람을 사랑(愛幼)하는 인류애(人類愛)이다. 안에 있는 예절의 마음과 밖으로 나타나는 예절의 언동(言動)이 일치해야 참 예절이다.²⁶⁾
자율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다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기를 규율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스스로 자기를 꾸짖는 자책지심(自責之心)이고, 스스로 꾸짖으려면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가리는 자기행위에 대한 시비판단(是非判斷)의 기준이 정립된 사람이 라야 가능할 것이다. 일의 잘잘못의 기준은 그 생활 문화권에서 모두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관행성 사회계약적 규범인 예절정신이 투철해야 자기가 예스럽게 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책망하고 부끄러워해 자율하게 되며, 법은 죄에 대한 형벌이 따르므로 두렵긴 하지만 잘못을 숨기고 거짓을 꾸며 형벌을 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못을 없앨 수 없으나, 예절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잘못을 알아 꾸짖는 바탕은 예의염치(禮義廉恥)이다.²⁷⁾
인성함양과 예절교육의 상관성은 집으로 비교한다면 주춧돌과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예절은 실제와 격식이 있으니 마음속 의사형태는 실제이고 그 의사형태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행동예절이다. 따라서 인성이 잘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한다 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인성이 잘 길들어져 있는 사람은 교육을 하는 만큼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이 5~60년대 춥고 배고픈 시절을 거쳐 7~80년대에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산업화 물결에 농촌 젊은이들은 직장을 따라 떠나게 되었고 그래서 밥상 머리 가정교육이 이때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후 1980년대에는 많은 시민들은 민주화만이 살길인양 우리의 정신문화의 계승발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자녀교육이 될 까닭이 없고 사회에서는 돈이면 다해결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으며, 학교조차도 기대할 수 없으니 대가족제도가 무너짐은 곧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전통문화 또한 함께 쇠퇴해 가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고 혹 농촌에 남은 층의 자녀들도 경제력이 조금은 나아졌으니 부모들의 교육열정에 의해 모두들 도시로 아이들을 유학을 시키기에 이른다. 현대사회의 핵가족화와 물질만능주의에 묻혀서 옛날의 관습적으로 이루어져온 예절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의 환경과 구조가 급속히 변화했고 이에 따라 교육 또한 현재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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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65〕
(26)〔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64〕
(27)〔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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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대에 옛 날의 전통예절을 지키려니 번거롭고 귀찮으니 구시대 유산인 것으로 일방적으로 치부하고 매도해 버린다.²⁸⁾
옛 선인들도 좋은 자손을 얻기 위해 잉태할 대부터 태교에도 정성을 들인 것은 마하고 행동할 수도 없는 시기부터 바르게 길러야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성은 성인들의 학설에 성선설이던 성악설 이든 간에 태어나서 부터의 환경과 교육의 영향에 크게 좌우됨으로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함에 틀림이 없다. 인성이 마음속에 내제되어 있는 것으로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행동이 바로 될 수가 없다. 만약 3〜4세 되는 어린아이라도 모든 것 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길들여진다면 이 아이는 자기가 싫다고 생각 하면 절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 할 것이다. 반대로 잘못하는 행동을 바로잡아주어 아이가 그것을 인정하고 따르게 된다면 이 아이는 의당 따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의 잘못에 꾸짖거나하면 잘못하는 행동에 대해 고쳐줄 생각은 안하고 아직은 어리니 그렇고 장차 크면 잘 하겠지 하고 그냥 넘기려고 한다. 마음으로부터 올바른 판단이 서지 않는 아이가 큰다고 제대로 고쳐질 까닭이 없을 것이며, 뒤늦게 고치려고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옛 선인들의 예의문화가 잘 전해내려 올 때에는 인성교육이니 예절교육이니 하는 단어조차 없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나 조상이 아이에게 올 바른 말로 타이르고 아이는 어른들의 말씀을 잘 따랐으니 이것이 곧 인성을 착하게 기르는 되는 것이고, 행동 또한 그러한 심성을 바탕으로 어른들이 하는 본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니 이것이 곧 해동예절이다.
요즈음 기관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현시대를 직시하고 다각도로 교육을 많이 하는데 모두가 기성세대에서도 하나같이 예절교육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인성교육이라고만 말한다. 이는 인성에 대해서 깊은 연구나 성찰이 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장성하여 직장에 들어온 청장년들에게 인성교육을 한다는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걷기 전부터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길들여 져야하는데 부모도 잘 가르치지 못하였거나 본보기가 부족했다면 지금은 인성보다는 밖으로 표출되는 바른 행동을 가르쳐야 함으로 솔직하고 이치에 맞게 예절을 가르친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한 것은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고 그렇게 불렀는데 동방예의지국이 인성강국이라면 인성위기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예절의 위기가 되었다는 것이고, 가정교육이 없어졌다는 것은 예절교육이 없어졌다는 것이며, 그것은 인성교육은 바로 예절교육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²⁹ 만약 성장기에 음주타령에 가족에게 말씨도 아무렇게나 하는 가정에서 자란 청년의 마음이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저하되었는데 인성교육은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해서 이 청년의 마음을 바뀌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스러운 일이다. 교육의성과는 조금은 있겠지마는 포괄적으로 마음속의 효심과 착하마음이나 밖으로 들어나는 행동도 모두다 예절이니 예절교육이라 함이 가장 적당한 말이라 할 수 있다.

Ⅲ.예절소양의 검정평가와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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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29)〔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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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절소양의 검정평가 방법
예절소양의 검정평가를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여야 함은 예절이 자율 기능 이라고 한다면 법은 타율기능 이라할 것이나 타율 기능을 동원해서라도 시행을 해야 하다는 절박한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사회 현상이나 제도권 기관인 정부부처나 교육기관 또는 사립교육단체도 모두 예절교육 과목이 없고 필요를 느끼고 있는 일부 에서도 진학과 학업성취에만 몰두하고 있다 보니 뜻있는 유림 단체나 사회단체에서 교육을 하려고 해도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여가를 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마찬가지이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³⁰
과거에는 군복무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여 병역의무를 다한 현역출신에게 3년의 긴 세월을 국토방위를 위해 몸 바쳤던 다소의 위로와 보상을 해주었었다. 그러다 일부 여성들의 헌법소원으로 그마져도 폐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도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과 군경원호 대상자 가족은 혜택을 받고 있다. 예절소양평가의 가산점제도 시행이 위의 사안과는 다소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하겠지만 예절교육이 단순한 사회교육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인(仁)사상을 정신으로 예절을 숭상해온 나라로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중요한 일이며 국가의 백년대계요 뿐만 아니라 전체국민에게 해당이 되기 때문에 국가의 시책으로 추진함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예절소양의 검정평가의 방법으로는 현재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 문화원에서는 소정의 검정 시험을 거처 법정등록 민간자격 제2008-0427호 로 예절자격증 관리기관으로 아래와 같이 예절소양인증 및 예절전문인자격 검증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³¹⁾

(지도 교육자)

1급
연구, 정책입안자, 예절지도자교육, 예절로 일가 이룬 예절전문인

2급
예절교육자이며 의례업소와 전례부서의 개설관리자

3급
예절법도와 의례격식이 체질화된 전문적인 예절종사자

예절소양인증
(인성,예절실천자)

4급
(대학생 수준)사회인으로서 인성과 예의생활에 손색없는 사회인

5급
(고등학생 수준)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예절소양을 갖춘 사람

6급
(중학생 수준) 어린이가 아님을 아는 예절소양을 갖춘 소년기

7급
(초등4, 5, 6학년 수준)학교생활을 자율적으로 항 줄 아는 어린이

8급
(초등1, 2, 3학년 수준) 아빠, 엄마가 아닌 아버지, 어머니에요

9급
(유치원, 어린이집 수준) 예절을 즐기는 인사하는 어린이



2. 각 등급별 응시자격 ³²⁾
가. 「예절전문인 3급 응시자격」
① 한국전례연구원과 한국전례연구원이 제휴한 예절교육시설 및 한국전례연구원과 동등 하---------------------------
(30)〔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31)〔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 2010〕
(32)〔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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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인정하는 예절지도자 교육시설에서 120시간 이상의 예절지도자 과정 교육을 이수한 사람.
② 계속하여 60회 이상의 사회교육 예절강의 경력이 있는 사람
③ 대학 또는 학점인정기관에서 예절과목을 B급 이상으로 20학점 이상을 취득한 사람
④ 예절소양인증 4급자격 보유자 또는 공인이나 법정등록 민간자격(예절분야)을 취득한 사람
나. 「예절전문인 2급 응시자격」
① 예절전문인 3급 자격보유자
② 대학에서 10학기 이상의 예절교과목 강의경력이 있는 사람
③ 예절분야 석사학위를 소지한 사람
다. 「예절전문인 1급 응시 자격」
① 예절전문인 2급 보유자
② 대학 예절관련 전임교원
③ 5년 이상 대학 강의 경력자
④ 단독으로 205쪽 이상의 전문 서를 편저, 간행한 실적이 있는 사람
라. 「검정시험과목」
① 예절전문인 3급: 한국의 예의 문화, 예론, 공통예절, 가정의례, 사회의례
② 예절전문인 2급: 위 3급 과목에 더하여 국가의전과 교안작성 A4 10장(11포인트), 강의실연을 추가
③ 예절전문인 1급: 위 2급 과목에 더하여 고금예학, 국제예절, 예절정책과 예절논문A4 20장(11포인트)을 추가
한국전례연구원에서는 1993년부터 예절지도자과정(120시간)교육을 실시하여 최근까지 1,500여명이 수료하여 전문인 자격증을 획득한 인원도 200여명이나 되며, 현재도 교육이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화원 김득중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교육을 확대해 가고 있는 중이다.
대학입시와 각종 취업시험에 예절수준을 중요한 요소로 반영 하려면 예절수준을 미리 검정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학생수준별 예절자격증은 현재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에서 예절소양인증을 실행 하고 있다. 장래에는 각 급 학교에서도 당연히 학생들이 예절소양인증 자격증을 받게 해야 할 것이고, 예절소양인증 자격증을 갖게 하려면 예절교육을 해야 할 것이며, 예절교육을 하려면 예절강사가 상당히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강사 양성이 시급하다 하겠다.
현재의 우리 사회현상은 일반인들도 아직은 예절교육에 별관심이 없고 특히 교육계는 미온적인 풍조가 있는 까닭으로 국가공인이 되어야 인정함은 물론 교육이 한층 더 원활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되며,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에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청원한 국가공인 인가된다면 오랜 기간 추진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과 실천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생각되어 전통예절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가르치려는 학자들은 하루 속히 이루어 질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예절교육은 그 특수성이 있어 이론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았거나 몸에 배어있어야 하며 오랜 기간을 이 분야에 종사해야 남의 앞에 설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부서에서도 당장 맡아 시행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므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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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쌓아왔고 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단체에서 국가공인자격 사무를 맡아 시행하게 된다면 오랜 기간 추진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과 실천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본다.

3.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는 방법
각 등급별로 성취도에 따라 적정수준으로 가산점을 정함에 배점 기준을 등급에 따라 성취도와 난이도를 참작하여 배점을 주어야 할 것이며 일반 다른 분야의 가산점과의 형평성을 유지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적정 수준의 점수를 배점한 것임.³³⁾

가산점

(예절전문인, 지도교육자)
1급-- 5점

(연구, 정책입안자, 예절지도자교육, 예절전문인)
2급--4.5점

(예절교육자이며 의례업소와 전례부서의 개설관리자)
3급--4점

(예절법도와 의례격식이 체질화된 전문적인 예절종사자)
예절소양인증- 인성예절 실천자)
4급--3.5점

(대학생 수준) 사회인으로 인성과 예의생활에 손색이 없는
5급--3점

(고교생 수준)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예절소양 갖춘 사람
6급--2점

(중학생 수준 이하) 어린이가 아님을 아는 예절소양을 갖춘 소년기
7급--1점

(초등4〜6학년 수준)학교생활을 자율적으로 할 줄 아는 어린이
8급
(초등1〜3학년 수준) 아빠, 엄마가 아닌 아버지, 어머니에요
9급
(유치원, 어린이집 수준) 예절을 즐기는 인사하는 어린이

가산점의 산정은 위 표에 의해 인증서 발급기관에서 확인이 되도록 하여 발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며, 운영방법으로는 대학입시의 경우 입학 지원서 제출 시에 자격증관리기관에 발급받아 동시에 제출 하도록 하여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취업 시에도 같은 방법으로 시행하면 될 것으로 본다.
가산점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선결 과제이므로 이에 대한 예절인 들의 열성과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이 된다면 고등학생 수준에 3점이면 대학 입시에 많아야 1%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본인들도 예절부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더욱 공부와 실천 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부모들도 가정에서부터 자녀 때문에도 스스로 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학교에서도 도덕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을 통해 교육 하는 등 이때 까지 도덕 시간을 타 교과목으로 전환하거나 경시하던 것과는 달리 도덕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될 것이며, 교사들 자신도 예절교육이 필수이니 당장 자기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도래 되는 것이다

Ⅳ. 결론(結論)
지금까지 인성함양과 예절교육의 상관성 및 예절소양의 검정평가와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사람의 인성이란 인간의 본래의 심성을 말하는 것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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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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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 년 전에 벌써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고 하는 설과 본래는 악하다는 설로 두 가지 설이 있으나 전자이든 후자이든 태어난 이후 경험하고 체득하는 과정에서 인성이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한다. 본래 선한 사람도 그 선한 마음을 계속 성장하면서 유지 하여야 할 것이고, 악했던 사람도 체득과 경험과 교육으로 선하게 성장하도록 노력 하여야 함으로 끊임없이 성찰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성장한 다음 공들이기보다 일찍부터 그렇게 대책을 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양식으로 옛 선인들은 잉태기 때부터 태교를 하는 등 인성을 잘 타고나서 선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요즈음 행정기관 또는 교육기관에서도 인성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예절에서 말하는 인성은 마음속에 내제되어있는 심성으로 이 또한 예절의 바탕이고 예절의 기본임에는 틀림이 없다.³‘⁾
또 밖으로 들어나는 의사표시나 행동은 행동예절인데 이 두 가지가 한데 융화되어 예절이 되므로 인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예절의 반쪽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포괄적으로 예절교육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마땅하다 하겠다. 또한 인성은 사람다움이고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가정교육으로 이루어지는 데 조부모가 있어야 교육이 수월하고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데 현재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부터 점차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화 함께 조부모가 안계시니 전통사회의 가정교육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³⁵⁾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할 함에도 급성장과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 환락추구에 개인주의가 팽배해 짐에 따라 모든 교육의 방향도 입시위주로 치우쳐서 도덕교육이 없어졌으니 인성함양의 방법인 예절교육 과목이 없어진 것이다. 또한 가정교육이 무너졌고 학교에서도 포기한 상태인데 사교육이나 학원에라도 의지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 학원 법에는 예절교과목을 둘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성교육 범국민 실천연합을 발족시켰는데 아직 그 방법론이 확실히 서있지 않은 상태이며, 중구난방 식으로 인성·예절을 가르친다고 해서 학생·부모·선생님 모두가 입시교육에만 순치(馴致)되어있는 형국에 공부가 제대로 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³⁶⁾
이러한 상황을 조속히 치유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은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모든 분야의 관심과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고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며 실효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 해결방법으로는 첫째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학생들이 취득할 수 있는 예절자격증제도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이 예절소양인증 자격증이 국가공인자격증으로 격상되고, 그 취득사실이 학적부에 등재되고, 예절소양인증 취득자는 진학과 취업 시에도 가산점이 주어진다면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예절공부를 할 것이고, 인성함양은 결정적일 것이며 예절소양인증 자격취득이 인성의 척도가 되어 자랑이 될 것이다.³⁷⁾
또한 사회전반에도 인성을 함양함과 동시에 예절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바람직한 풍토가 자연히 형성될 것이다. 학생들이 예절을 공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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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김득중 실천생활예절 2008 p 55〕
(35)〔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36)〔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37)〔김득중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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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관리업무도 이와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유치원생부터 1급 정책입안자에 이르기까지 9등급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고 있는데 각 등급별로 나누어서 위에서 논술한 내용과 같이 시행하는 것이 가장 적정할 것으로 본다.
일반인의 직장 취업 시에도 같은 방법으로 인용하면 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학교생활 때만 예절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해 직장인이 되어 사회샐활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되므로 결국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예절이 생활화 하고 실천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탈바꿈하게 되어 머지않아 ‘예의한국재건’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이 다져질 것으로 확신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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