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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는 우리의 고유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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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2005-02-02 오전 1:25:21 155 강 석 우


예(禮)는 우리의 고유문화(固有文化)이다.

최근 우리 안동은 세계에서 선정하는 65개 역사도시(歷史都市)에 선정 되었고,
우리시는 ″한국의 정신문화의수도(精神文化의首都)″라고 자부하고 또 밖으로도 널리 알려져
우리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이와 때를 맞추어서 우리는 아름다운 역사(歷史)와, 유적(遺蹟)과, 우리의 정신문화를 자랑
하는 만큼, 안동인 모두는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우리의 아름답던 예절문화를 잘 이어받아

실천(實踐)함으로써 후세(後世)들 에게도 본받게 함은 물론 명실(名實)공 히 정신문화의 수도
(首都)로 자리매김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禮)는 우리의 생활방법(生活方法)을 말하며 흔히 전통예절(傳統禮節)과 현대예절(現代禮節)
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옛날에 하던 전래(傳來)의 것이라고 모두 전통(傳統)이 될 수 없으며 현대에 사는 우리가 전래
하는 것에 대해 긍정(肯定)하고 신뢰(信賴)해서 수호(守護) 계승(繼承)할 가치가 있어 실제
지키고 실천(實踐)하는 것 이어야 전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전통예절(傳統禮節)은 묵은 것이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생활에 적용되는 전래
(傳來)의 예절이며,

오늘날 버릇이 없다함은 옛날의 고례(古禮)를 몰라서가아니라 전통(傳統)을 포함한 현대예절을
이행(履行)하지 않아서 이다.

윤리(倫理)는 인간(人間)이 지켜야할 도리(道理)이고,
도덕(道德)은 인간이 지켜야할 품성(品性)이며,
예절(禮節)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方法)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각기 특유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같은 생활문화권(生活文化圈)에서 통용되는
것이어야 함으로 예를 사회계약적(社會契約的)생활규범(生活規範)이라고도 한다.

예(禮)의 목적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양면을 지향하고 있는데 수기는 수신(修身)으로서
자신을 바르게 해 양심(良心)을 정립(定立)하는 것이요, 치인(治人)은 대인(對人)관계를
원만하게 영위(營爲)하는 것이다.

예(禮)의 본질(本質)은 수기(修己)이다.

즉 대내적(對內的)은 대자적(對自的)으로 자신에게 작용하는 단계에는 정성(精誠)스러움 이고,
대외적(對外的)은 대타적(對他的)으로 대인 관계에 활용되는 단계에는 공경(敬)과 사랑(愛)이다.

따라서 성(誠)은 안에 있고 경 애(敬,愛)는 밖에 있어 그것이 일치할 때 비로소 예(禮)가
바르게 된다.

예가 적용되는 영역(領域)은 홀로 있을 때도 자신(自身)을 삼가는 신독(愼獨), 가정(家庭),
사회(社會), 국가(國家), 국제간(國際間)등 인간(人間)이 있고 생활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예(禮)가 있고 행(行)해진다.

현대사회(現代社會)를 법치사회(法治社會)라고도 한다.

예(禮)가 잘 행해지지 않음으로 예의(禮儀)에 규율(規律)하는 타율기능 즉 법(法)으로라도 인간
(人間) 다움을 지키도록 하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목적(目的)에 의해 서이다.

예(禮)에는 실제(實際)와 격식(格式)이 있는데 실제는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성스러운 의사
(意思)이고, 격식은 의사가 밖으로 표출되어 행동화(行動化)함에 따른 방법인데, 의사(意思)를

남에게 인지(認知) 시키는 수단(手段)에는 언어와 행동의 두 가지가 있으며,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만인 공통의 어휘(語彙)와 동작(動作)이 격식이다.

예(禮)는 우리의 고유문화(固有文化)이다.

우리의 전통예절(傳統禮節)은 유학(儒學)에 의한 외래문화(外來文化)가 아니라는 것도 문헌
(文獻)을 통해 알 수 있다.

유학은 공자(孔子)가 창시(創始)하였고 공자는 2,500년 전 사람이며, 우리의 역사(歷史)는
4,338년으로 공자이전 1,800년도 예절은 있었을 것이다.

공자의 사상(思想)과 행적(行跡)을 실은 논어(論語)에 한국을 ˝군자(君子)의 나라″ 라고
동경(憧憬)하고 살고 싶어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맹자(孟子)에 ″순(舜)은 동이(東夷)의 사람이다″라고 했으며, 효(孝)의 표본이며 윤리문화의
선성(先聖)이라 하면서 그가 한국인 이라고 했음은 중국의 윤리문화(倫理文化)의 발원(發源)이
한국이라는 말이 된다.

소학(小學)에 공자의 말씀에 ″소연(小連)과 대연(大連)이 부모가 돌아가자 3년을 슬퍼했는데
그들은 동이(東夷)의 아들이다″ 라고 했다.

부모(父母)상에 3년 복(服)을 입은 것이 한국이 효시(嚆矢)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위(魏)의 동이열전(東夷列傳)에 ″ 동방에 예부터 나라가 있으니 동이(東夷)라 한다.
단군이 있으니 구이(九夷) 사람들이 받들어서 임금으로 모셨다. ″

순(舜)은 동이(東夷)에서 낳고 중국으로 와서 천자(天子)가 되어 정치를 잘하니 백왕(百王)의
으뜸이라고 했다.

나라가 비록 크나 교만(驕慢)하지 않고, 군사(軍事)가 비록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고,
풍속이 순후(淳厚)해 길을 서로 양보하고, 남녀가 따로 거쳐해 자리를 같이 안하니

″ 동방예의지 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 이라고 했으며, 공자가 바로 그 나라에 살고 싶어 하면서
″ 군자가 사는 나라이니 누추하지 않다 ″고 했다 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전통예절은 유학(儒學)에 의한 외래문화가 아니며 전통예절문화는
한국이 시원(始原)이므로 예의문화 종주국(禮儀文化 宗主國)으로서 긍지(肯志)와 자부심(自負心)을
갖고 더욱 잘 지키면서 길이 전승(傳承)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과거(過去)에는 예절에 대하여 특별히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어른들과의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서 스스로 체험(體驗)을 통해 행(行)할 수 있는 본보기가 있었다.

집에서나 이웃과의 관계나 사회생활 속에서 모두가 보고 듣고 본받을 수 있는 풍토(風土)가 조성(造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어릴때 부터 서당(書堂)이나 향교(鄕校)에서 학습내용이 주로 전인교육
(全人敎育)으로서 오륜(五倫)과 덕행함양(德行涵養)의 요점을 서술한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교훈(敎訓)적인 내용의 교재(敎材)인 계몽편(啓蒙篇)을 가르쳤으며,

10 여세가 넘으면 인간생활(人間生活)의 길잡이요 품행(品行)과 덕성(德性)을 함양하도록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익히게 했고,

그 다음 더욱 정진하면 옛 성인(聖人)들이 남긴 말씀이 담긴 유교(儒敎)의 경전(經典)과 사서오경
(四書五經)을 배우게 했다.

이상과 같이 옛날에는 어릴 때부터 가정(家庭)과 사회(社會)에서 보고 들으면서 생활예절
(生活禮節)을 익혀 왔으며, 교육 내용도 인성(人性)교육 그 자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전통예절 교육이 단절된 상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가정에서는 핵가족화와 조기유학(早期遊學)으로 부모와의 대화 시간이 줄어들었고,
하나 둘씩 낳은 자식을 귀 하게만 키웠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꾸짖거나 사랑의 매인
체벌(體罰)을 하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또한 학교생활에서도 선생님의 훈도(訓導)나 체벌이 혹 지나침이 있었다 하더라도 법정(法庭)
시비 까지 가는 이 현실(現實) 속에서 어느 선생님이 불편(不便)을 자초(自招)하여 회초리를
들면서까지 애를 쓰겠는가?

이러한 점은 기성(旣成)세대 특히 4~50대 부모들에게 그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성(人性)교육이 잘되는 전제 조건이 반드시 체벌이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마는
사람의 버릇은 3~6세 때 이미 길들여지니 유아기(幼兒期)의 교육은 부모에게 달려 있기 때문
이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어머니 윤(尹)씨 부인(婦人)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부군(夫君)이 순국(殉國)하였는데,

유복자(遺腹子)인 아들이 잘못이 있으면 그 아들을 시켜 남편 사당(祠堂)에 비단보로 싸둔
회초리를 가져오게 하여 종아리를 때리면서 ″이 매는 이 어미가 때리는 것이 아니라 너의 아버님
께서 때리는 것이다 너는 남과 달라, 편모 자식이라 잘못이 있으면 그 욕이 남보다 클 것이다″라고
했다.

지극한 어머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훈육(訓育)을 받고 자란 두 아들 중 큰아들은 대제학
(大提學)에 올랐으며 그의 딸이 숙종의 비(妃)가 되어 임금의 장인(國舅)이 되었고,

작은아들 서포 김만중(金萬重)은 지극한 효성(孝誠)과 학자(學者)로서 후대에 빛을 낸 큰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윤(尹)씨 부인의 매는 벌이 아닌 가르침 이었고, 그 매는 아픔이 아닌 후회(後悔)와
경각(警覺)과 다짐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때늦은 감이 있지마는 지금이라도 각 가정(家庭)과 기성세대(旣成世代)들의 이해는
물론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實踐)이 있어야 우리의 전통예절은 다시 회복(回復)하고 길이 전승
(傳承)되어 갈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이러한 점은 우리 사회의 지성(知性)인 모두가 마음속에만 깊이 내재(內在)하고 있는
양식(良識)을 밖으로 나타내어 행할 때이며,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작은 것부터 실천이 선행(先行)될 때만이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우리 안동이 ″한국의 정신문화의 수도(精神文化의首都)″라고 지칭(指稱)함이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려면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오랜 역사, 국난을 이겨낸 선비정신(精神),

수많은 문화유산(文化遺産), 그리고 아름답던 예절문화(禮節文化)들을 실천(實踐)하고
전승(傳承)해 나가야할 때 이며,

특히 실행(實行)이 어려운 예절 문화는 우리 스스로 행(行)하면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 종택(宗宅), 사찰(寺刹), 고택(古宅)을 찾아오는 관광객이나 외국인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 주듯이,

시내 어느 거리에서나 농촌의 들녘에서도 사람이 모이는 어떤 장소에서든 우리의 전통예절을
행하고 있음을 직접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그렇게 할 때 만이 그들은 우리 안동을 ″한국의 정신문화의수도(韓國의 精神文化의首都)″라고
인정(認定)하고,

또한 그렇게 확실(確實)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끝.

2005. 2. 3.